철도 역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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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타이완의 철도역과 문화 보존 | 2019.10.14 |
5 | 150년 역사의 영국의 판크라스역 ( St.Pancras International) | 2019.10.07 |
4 | 독일 철도 네트워크의 발전과 베를린 중앙역의 개발 | 2019.09.23 |
3 | 일본 JR규슈 & JR홋카이도 역사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지방역 | 2019.09.16 |
2 | 중국의 동북3성 거점 단동역과 훈춘역 | 2019.09.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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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철도역과 문화 보존 | 2019.10.14 |
타이완의 철도역과 문화 보존 최근 동아시아는 고속철도를 통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1964년 일본이 가장 먼저 개통한 고속철도는 우리나라, 중국, 타이완이 개통하여 지금은 국가 통합과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 일본과 우리나라의 철도역 소개에 이어 2007년 고속철도를 개통한 타이완의 철도역과 철도역을 통한 문화유산을 소개한다. 타이완의 철도역과 문화 타이완은 인구가 2,354만 명, 면적은 25,980㎢로 면적이 100,363㎢인 대한민국의 약 1/3 규모이다. 경제력은 2018년 기준으로 1인당 GDP(ppp 기준)로 50,500$이다. 인구는 도시에 집중되어 도시화율은 78.2%, 수도 타이베이 근방에 약 7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타이완 철도영업거리는 1,613km이며 이중 고속철도가 345km(표준궤), 나머지는 협궤로 1,268km를 운영하고 있다. 철도영업 연장은 세계 81위다. 참고로 미국이 293,564km로 1위이고 중국, 러시아, 인도가 그 뒤를 잇고 있다. 우리나라는 3,979km로 48위다. 한편 도로는 38,528km로 자동차가 매우 발달하였지만 남북으로 연결하는 교통은 고속철도가 담당하고 있다. 타이완은 철도를 포함한 공공교통수단의 분담률이 24.7%이며 타이베이의 경우는 62.7%로 매우 높다. 특이하게 대도시인 가오슝의 경우는 14.6%로 매우 낮은데 이는 오토바이 등 2륜차의 분담률이 67.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이완의 철도 역사를 보면 최초로 철도가 부설된 것은 청나라 시대인 1891년 개통한 치롱(基隆)~타이베이(台北) 구간 28.6km이었다. 후에 신쥬(新竹)까지 연장되었다. 이는 당시 청나라의 최초의 관설철도였다. 궤간은 1,067mm의 협궤였다. 남북을 연결하는 종관선은 1908년에 치롱에서 가오슝까지 408.5km가 완공되었다. 타이완의 수도에 있는 타이베이역은 1891년에 만들어졌으며 그간 3대에 걸쳐 개축과 신축을 했으며 지금의 역은 4번째로 1989년에 완공되었다. 지하철은 1997년에 개통되어 이 역은 간선과 도시교통의 허브역으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타이베이역의 1일 이용객을 보면 고속철도 이용객이 120,738명, 일반철도 이용객이 189,207명, 지하철 이용객이 782,668명이다. 이 역은 교통의 기능과 함께 문화역으로도 기능을 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협궤의 증기기관차가 그대로 전시되어 있으며 정시에 기적을 울리고 있다. 타이베이역의 내부는 넓은 대합실과 함께 지상에는 쇼핑과 음식점등이 입점해 있으면 철도는 지하에서 탑승하도록 되어 있다. ▲타이완 철도노선도 ▲타이베이역 내부 ▲타이베이역 구내의 챠량 전시물 ▲타이베이역 타이완의 철도 문화유산 대만의 경우 철도역을 중심으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1895년부터 일본이 대만철도를 약 50년간 운영하여서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대만의 경우는 철도문화보존협회가 있어 이협회를 중심으로 철도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예전 가오슝항의 종착역인 다카오역에 철도박물관을 만들어서 역의 자료와 함께 차량을 함께 전시하고 있다. 다카오역의 예전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서적과 차량, 사진 등을 그대로 보전하고 있다. 예전 가오슝역의 모습도 그대로 보존하고 철도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역은 신역의 신축 계획에 따라 이전 또는 철거가 불가피했는데 이 역의 역사적 의미를 살려 주변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결정하여 2002년 8월에 3,500t의 이역을 기중기에 실어 매일 6m씩 이동하여 14일간 82.6m를 이동하여 현 위치로 이동시켰다. 또한 다른 주요 역의 경우에도 철도 관련 차량을 전시하거나 예전 철도역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철도전시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타이완 철도의 특징의 하나가 철도를 이용한 지방 여행이다. 지방 주요 지역으로 철도가 연결되어 있고 이 또한 예전 지방의 중심지로 그대로 이동하여 여행의 묘미를 더해주고 있다. ▲구 다카오역 철도박물관의 차량 전시(대만 가오슝 소재) ▲구 다카오역 철도박물관 내 예전 부근 사진(대만 가오슝 소재) ▲구 가오슝역(1941년 신축)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철도전시관으로 활용 ▲타이완의 지방철도여행(삶과 철도의 공존) [참고문헌] CIA, World Factb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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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역사의 영국의 판크라스역 ( St.Pancras International) | 2019.10.07 |
150년 역사의 영국의 판크라스역 ( St.Pancras International) 1. 철도를 통한 변화 로마시대에 도로를 통하여 문물이 세계로 퍼져나갔듯이 19세기에는 철도가 사회를 크게 변화시켰다. 영국에서는 1825년에 철도가 개통되어 1850년에 1일 이용객은 185,000명으로 이용자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철도를 통한 1인당 여행횟수는 1850년의 3.2회에서 1900년에 30.1회로 약 10배나 증가하였다. 철도는 사회적으로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동의 자유를 통해 여행이 보편화되었고 문화가 전파되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이동시간이 단축되어, 새로운 산업도 발달하였다. 런던의 주요 역은 지역의 중심이었고 철도역에 처음으로 수세식 화장실이 등장하였고, 전염병을 막기 위해 철도로 식수가 공급되기도 하였다. 영국에 가면 역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원래는 여행업을 했던 토마스 쿡(Tomas Cook,1808-1892)은 종교적인 목적을 가진 금주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철도를 자주 이용하였고 후에 자신이 직접여행사를 만들어 이용을 대중화시켰다. 또한 철도수송으로 우편요금이 저렴하게 되었고, 신문. 잡지도 널리 보급되었다. 또한 문학과 예술에도 철도를 소재한 시와 소설이 쓰여 졌으며 찰스 디킨스(Dickens)의 소설에도 철도가 자주 등장하였다. 철도가 개통되고 가장 중요한 단어는 rail, railway, station, train, locomotive였다. 철도개통으로 표준시가 생겨났고 열차에 1등석, 2등석 등의 구별과 이동으로 음식과 문화가 널리 전파되었다. 2. 영국철도의 발전 1880년 영국 내에서는 약 400개의 철도회사가 있었고 1921년 이전에는 140개 그리고 1921년 철도법에 의해 4개회사로 통합 운영되었고 1947년 국유화까지 4개회사 체제가 지속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정부는 철도운영에 깊이 관여하였고 이 결과 철도운영은 자율성보다는 경직성을 띠게 되었다. 1947년 정권을 잡은 노동당은 모든 교통수단을 국유화하였고 이는 노동당의 교통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었다. 당시에 이를 추진한 것은 영국운수위원회(British Transport Commission : BTC)로 항공을 제외한 육상수송을 모두 국유화하였다. 1947년 교통법에 의하면 이 조직의 임무를 “능률적이고, 경제적 이며 적절하게 통합된 공용의 육상교통수단과 항만시스템을 제공하는 것을 ”을 목표로 있다. 이에 철도는 1947년 이후 이전의 민간 운영에서 국유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1953년 보수당정권에 의해 국유화된 트럭을 민영화시키고 국유철도는 지역으로 분할하는 개편을 단행하였고 최고운임만을 정하는 규제완화를 행하였다. 보수당은 1953년부터 약 10년 후 1962년 교통법에 의해 영국운수위원회를 폐지하고 철도운영을 전국일체화로 바꾸고 수송수단을 각각 공사로 분할 독립시켜 상호경쟁을 촉진하는 정책을 취하였다. 철도의 경우 자유화를 추진하고 적자 노선의 철도서비스의 폐지 등을 자유롭게 하는 등 통합으로부터 경쟁으로 철도정책을 변화시켰다. 1968년 다시 노동당이 정권을 잡고 노동당의 이념에 기초한 정책을 취하였는데 이는 1947년 공적으로 하나로 운영되는 철도로 돌아가지 않고 어느 정도 시장의 현실을 반영한 정책을 취하였다. 예를 들면 철도의 적자선에 대해 내부보조에서 공적보조로의 전환을 명확히 하였다. 1974년의 철도법에 의해 철도의 사회적 책임이 강화되었고 이로 인하여 철도는 사회적 필요성이 인정되어 발생한 적자에 대해서는 정부 보조가 시작되었다. 1975년의 보조금은 324백만 파운드였다. 최근 영국철도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2007년 개통된 108km의 신설 고속노선을 통하여 새로운 종착역인 런던의 세인트 판크라스(St. Pancras)역까지 연장되었다. 이 역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유로 스타로 2시간15분이면 도달할 수 있다. 이 서비스는 장래 북쪽 스코틀랜드까지 확대될 예정이다. 현재 영국에서는 틸팅 차량인 팬톨리노(Pendolino)가 최고속도 200km/h로 글래스고우에서 런던까지 운행 중에 있다. 영국의 철도수송량을 보면 여객의 경우 2105년에 연간 644억인·km로 세계 9위를 기록하였다. 최근 10년간의 자료를 보면 지역 간 철도와 지하철 승객이 꾸준하게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표> 최근의 철도변화 자료: 영국 교통부 홈페이지(http://www.dft.gov.uk) ▲ <지도> 영국의 주요 간선 철도노선도(유로스타 종착역이 세인트 판크라스역) 3.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역 (St.Pancras) 런던에는 철도역이 몇 개있는데 그 중 유로스타와 유라시아 철도의 종착역이 판크라스역이다. 판크라스 역은 건축사에 남을 중요한 역으로, 설계자는 윌리엄 헨리 바로우이며 양식은 고식 부흥양식이다. 금년이 건립 150주년으로 이 역은 1868년에 주철을 사용하여 기둥간 거리를 73m로 늘려 건설된, 당시로써는 가히 혁신적인 양식으로 지어졌다. 이전에 지어진 수정궁과 함께 판크라스 역은 영국 건축의 혁신의 상징이었다. 이에 대응하여 프랑스는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300m 높이의 에펠탑과 115m의 기둥 간 간격을 가진 기계관을 선보였다. 또한 이 역은 호텔이 유명하다. 당시 철도는 역에서 숙박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이를 통해 지역 간 또는 국가 간 이동에 편리하게 사용되었다. ▲ 영국 판크라스역 전경과 철도호텔(Middle land Grand 호텔) 이 역은 1868년 10월1일 개통 이후 런던의 중심으로 발전해 왔는데 2007년 12월9일 유럽의 고속철도인 유로스타의 종착역으로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리모델링을 위해 약 8억파운드가 투자되었다. 이는 런던의 동부 개발계획의 일환이었다. 홈은 15개선이 있으며 킹스크로스역, 지하철 킹스크로스 역, 지하철 판크라스역과 환승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역내에는 레스토랑과 쇼핑센터가 같이 있으며 철도 이용객은 700만명 정도이다. ▲ 영국 세인트 판크라스역 홈 전경 역은 건립당시 미들랜드 철도회사(MR)가 자신의 터미널로 만들었는데 당시 호텔도 함께 건축되었다. 초기 영국철도는 민간철도가 스스로 노선과 역을 건설하였다. 영국정부는 초기의 철도운영에 간여하지 않았고 철도건설은 의회에서 법안을 만들어 이를 추진하였다. 당시 지역 국회의원들은 경쟁적으로 자신의 지역 내에 철도를 건설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1845년까지 1,000개의 철도건설 프로젝트가 추진되었는데 이는 중앙정부의 계획이 아니었고 지방계획으로 비교적 용이하게 추진되었다. 이에 굴곡이 많고 수익성이 낮은 노선이 많이 건설되었는데 이는 급하게 철도건설을 추진하다 보니 철도매수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영국에서 틸팅열차가 운행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부가 철도운영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철도사고 때문이었다. 철도안전등을 보장하기 위하여 1840년에 철도규제법을 만들었고, 1842년에 철도감독관이 생기게 되었다. 19세기말의 철도운영의 특징은 민간회사가 자신이 철도를 건설하고 자신이 운영하고 체제였다. 민간철도 회사 중의 하나 였던 미들랜드 철도 회사는 기차역에 호텔을 함께 건축했는데, 공모전에서 우승한 조지 길버트 스콧 경(1811~1878년)은 객실이 300개가 넘는 가장 크고, 값비싼 건물을 설계했다. 고딕양식으로 박공과 피너클 천지인 외관을 가지고 있다. 6천만 개의 노팅검 산 붉은 벽돌과 다양한 영국 석재를 사용한 다채로운 건물 본체 역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호텔내부는 만찬장과 커피 룸의 기둥은 핑크색과 녹색의 광을 낸 석회암이다. 여성용 흡연실은 세계 최초이며, 화강암 기둥, 돌 조각, 그리고 두 개의 대리석 벽난로를 자랑한다. 벽과 천장의 정교한 스텐실과 금박이 화려한 벽지에 더해, 마지막 한 뼘까지 장식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 없다. 크리놀린을 입은 여성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한 넓은 복도는 길이가 152미터나 된다. 이러한 호텔은 우리나라의 초기 철도역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 부산역은 철도호텔이 함께 건립되어 운영되었던 기록이 있다. ▲ 구 부산역과 부산철도호텔 <참고문헌> 이용상외, 유럽철도의 역사와 발전, 북갤러리, 2009년 영국 교통부 홈페이지(http://www.dft.gov.uk) 판크라스역 홈페이지(https://stpancra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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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철도 네트워크의 발전과 베를린 중앙역의 개발 | 2019.09.23 |
독일 철도 네트워크의 발전과 베를린 중앙역의 개발 철도는 그간 역과 역을 연결하는 교통수단에서 역과 지역을 발전시키는 공간의 개념을 포함하여 발전하고 있다. 교통수단 중에서 환경과 에너지 면에서 효율적인 철도는 이제 그 영역을 새롭게 확장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중 철도역의 중요성이 다시 부각되고 있으며, 교통과 지역발전에서는 TOD(Transit Oriented Development) 개념이 도입되어 그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철도역은 이제 교통의 결절점으로서, 도시의 상징으로서 미적인 면에서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이러한 새로운 역의 개념을 도입하여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독일의 베를린 중앙역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독일 철도의 발전 독일은 통일 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동서부의 균형적인 개발과 철도역과 지역을 일체적으로 개발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독일 철도의 영업거리는 4만 3,468.3km로 세계에서 6번째로 긴 길이를 자랑하고 있다. 2016년 자료에 따르면 면적 대비 철도연장(km/㎢)은 94km로 OECD 국가 중에서 체코, 벨기에, 스위스에 이어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복선화율은 55%, 전철화율은 60%이다. 독일의 철도 수송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여객수송량은 연간 약 65억 명을 수송하여 일본에 이어 2위, 화물의 경우는 연간 3억 4,100만 톤을 수송하여 세계 7위이다. 독일 철도의 발전 과정을 보면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6만km의 철도망을 보유했는데 패전 이후 영토상실, 동서분할에 의한 노선분단, 그리고 채산성이 없는 노선의 폐선 등으로 영업거리가 축소되었다. 독일의 철도망은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수도 베를린을 중심으로 독일의 주요 도시를 방사선으로 연결하였다. 또한 프랑스와 러시아를 가상으로 적으로 국방상의 문제로 남북보다는 동서를 연결하는 노선이 중요시되었다. 분단 이후 동서독은 각각의 국내 철도망을 확대해왔으나, 1990년 재통일 이후 베를린 중심의 방사선 철도망을 구축하고 있다. 아래의 그림을 보면 독일 철도망이 베를린 중심으로 방사선으로 연결된 것을 알 수 있다. 독일 철도의 특징은 고속철도인 ICE를 중심으로 한 철도운영과 지리적인 위치로 국제화물수송과 국내화물수송에서 철도 분담률이 높은 편이다. 아울러 지역철도망이 발달하여 독일 내의 어느 곳이라도 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다. 독일 철도의 발전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제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독일제국철도에서 160km/h 속력의 차량이 운행되었다. 1962년 고급 철도인 라인골드를 통해 철도의 고속 운행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1965년 뮌헨에서 열린 국제 교통박람회를 기회로 뮌헨~아우크스부르크 구간을 200km/h 로 운행하였다. 1960년대부터 독일 전역에 고속철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연구가 시작되었으며, 1973년 연방 도로교통계획을 통해 7개의 신규 고속철도 구간과 8개의 확장철도 구간의 구축 계획을 발표하였다. 1971년부터 1985년 사이에 950km 길이의 신규 고속철도 구간과 1,250km 길이의 연장 구간이 완공되었다, 1973년 독일의 첫 고속철도 신규노선인 하노버~뷔르츠부르크 노선의 건설이 시작되었고, 이 노선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첫 장거리 노선이 되었다 . 1976년 두 번째 신규노선 만하임~슈투트가르트 노선의 공사가 시작되었고, 1977년 42.7km 길이의 뮌헨~아우스부르크 노선이 200km/h 운행을 시작함으로써 고속화된 철도의 정기운행이 도입되었다. 1981년 고속철도 노선의 총거리는 256.3km에 도달했고, 1986년에는 470km, 1988년에는 640km까지 확대되었다. 연장 및 신규 건설된 독일의 고속철도는 연장 설치된 구간에서 약 200km/h에서 230km/h의 속력을 내며, 신규 설치된 구간의 경우, 6개 구간은 250km/h, 3개 구간에서는 300km/h의 속력을 낸다. 이외에도 기존의 철로를 이용하여 운행하는 구간도 있으며, 이 경우 약 160km/h까지의 속력으로 운행한다. 연장 설치된 고속철도는 총길이가 2015년 현재 약 1,620km이고, 신규 설치된 고속철도의 경우는 약 1,015km로 모든 고속철도의 노선 길이는 약 2,635km이다. 거의 모든 고속철도 노선은 여객운송뿐만 아니라 화물운송에까지 이용되며, 부분적으로는 단거리 지역 열차가 운행되기도 한다. 베를린 중앙역의 건설 베를린 중앙역은 ‘통독 프로젝트’에 따라 주변의 포츠담광장과 국회의사당의 재건축과 함께 2006년 4월에 완공되었다. 분단 전 베를린 중앙역이 위치했던 곳은 원래 1871년 건설된 레아터역(Lehrter Bahnhof)이 운영되었다. 이 역은 베를린과 하노버 노선의 출발역이자 종착역이었다. 당시 고가로 동서 방향의 도시철도 슈타트반(SB)이 완공되어 도시 내 연계 교통 체계가 구축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도시 철도망의 재편과 재건이 추진되었다. 기존의 동서 방향의 슈타드반과 함께 남북 방향의 슈타트반이 건설되었다. 중앙역의 건설 기간은 11년이 소요되었다. 당초 베를린 중앙역은 베를린시에서 개발을 버섯(Mushroom) 모양의 개념으로 추진하였다. 주요 내용을 보면 옛 레아터 역 부지에 동서 방향과 남북 방향으로 교차하고 환승 가능한 중앙역을 건설하고 새 중앙역과 남쪽 교차역인 주트크로이츠(Suedkreuz)역을 연결하는 남북 라인 터널 및 철도를 건설하는 것 베를린 중앙역은 바로 이 중심에 건설되어 베를린의 철도망을 획기적으로 재편하였는데 베를린의 다핵의 도시에서 역 중심의 도심 중심부 개발계획이었다. 베를린 중앙역은 지역 간 철도와 함께 도시철도와 지하철이 함께 운영되는 완성된 연계교통체계를 구축하였다. 역은 전면 유리벽을 사용하였고 철도가 층별로 교차하고 있다. 장거리열차, 단거리열차, 도시 간 열차가 운영되고 있으며 러시아, 우크라이나까지 국제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베를린 중앙역의 시사점 베를린 중앙역은 연계교통이 가장 편리한 곳에 위치를 정하여 개발을 했다. 부지 선정은 동서 방향과 남북 방향의 도시철도 교차점과 유휴 부지를 활용 가능한 곳으로 정하였다. 그리고 중앙역의 개발을 위해 연방정부와 베를린 주정부, 시정부와 철도공무원 간에 많은 토론이 있었다. 다핵을 축으로 하는 순환형 교통망과 축과 교차를 중심하는 계획의 절충적인 개념으로 버섯형의 철도네트워크 정비안이 마련되었다. 아울러 도심부 재생계획안으로 통합적 철도역사 개발에 나서 철도역사 자체의 복합적 기능을 수용하고 역 주변의 복합적인 개발로 단절과 분단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였다. 베를린 중앙역은 현재 매일 약 30만 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1만 5,000㎡ 규모의 상업시설이 함께 운영되어 철도역이 지역을 재생시키고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 (참고문헌) . 한국철도문화재단, 『철도기술의 사회경제적 영향력에 관한 연구』 2017년 7월 . 신예경 외, 『통일 이후 철도시스템 기반의 도시공간재편 전략에 관한 사례 비교연구』 .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국토계획』 제50권제1호, 2015년1월, pp.140-1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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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JR규슈 & JR홋카이도 역사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지방역 | 2019.09.16 |
이야기가 있는 아름다운 지방역 일본 JR규슈 & JR홋카이도 역사 원래 철도라는 교통수단은 자본주의 체제의 성립기에 공업 원료나 제품의 대량 고속 수송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140년이 넘는 철도의 역사를 가진 일본은 사회 전체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한 「이기(利器)」로서 도입되었다. 일본의 철도는 그 도입 당시부터 서구 근대문명의 흡수, 모방을 축으로 하는 이른바 「문명개화」의 추진 기능을 기대하고, 이에 대한 결과로서 다분히 표면적으로 「문명개화」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시스템의 변혁과 이용자의 의식 변화를 유도하는 근대화를 추진했다. 140년의 역사를 가진 철도대국 일본 일본 철도는 1872년 토쿄(東京)~요코하마(?浜) 구간이 개통되며 역사가 시작된다. 그로부터 140여년이 지난 요즘, 일본은 전 세계 철도승객의 30%를 차지하는 철도대국으로 성장했다. 열차 종류 또한 다양하다. 고속열차ㆍ일반열차ㆍ침대열차ㆍ노면전차ㆍ지하철ㆍ모노레일ㆍ증기기관차 등. 이 쯤 되면 지붕 없는 철도박물관 수준이다. 일찍이 철도대국으로서의 발판을 마련한 일본의 철도 수송 기능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정착이라는 뜻밖의 결과를 불러왔다. 이러한 결과로 일본철도의 특색은 먼저 「근대화의 견인차」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철도 도입 당시의 일본의 상황이나 도입 후 1세기를 넘는 흐름 속에서 철도의 역할을 보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였다. 일본철도의 특징 중의 하나는 모든 철도가 사설 철도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간선철도의 경우 국유 철도인 일본 국유 철도가 담당했지만 1987년 민영 회사로 바뀌어 지금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모든 철도를 민간에서 운영하고 있다. 구 국철은 현재 6개의 회사로 바뀌었는데 간선뿐만 아니라 지방선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방선의 역들은 최근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관광자원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특히 최남단 지역인 JR규슈와 가장 북쪽에 있는 JR홋카이도의 지방역들 중에는 역사를 간직한 명소들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표 1> 일본의 철도 사업자 수(2017년 7월 1일) JR규슈 하우스덴보스역 ▲예전 해군훈련소였던 하우스덴보스와 철도역 ▲역에서 바라본 하우스덴보스(네덜란드 마을) 풍경 이름답게 역 바로 옆에 하우스텐보스가 있으며, 일본 나가사키현 사세보시에 위치해 있다. JR규슈의 지방철도의 오무라(大村)선은 1898년 1월 20일 개통하였으며, 구간은 나가사키현 사세보시 하이사키역에서 이사하야역까지 47.6km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역수는 13개이며 일부가 전철화되어 있다. 지와타역은 단선이며, 오무라선의 중간역으로 이 구간의 최고 속도는 시속 95km이다. 하우스덴보스역은 1992년 하우스덴보스의 개장과 함께 부설된 JR규슈의 오무라선(大村線에서 가장 최근에 지어진 역이다. 네덜란드 마을을 그대로 재현한 테마파크의 입구역으로서 JR철도역들 중에서 드물게 영문명을 그대로 쓰고 있다. 오무라선의 경우 하카다역에서 이 역까지 특급열차 운영을 위해 전철화되었다. 하우스덴보스 테마파크는 1943년 해군부대가 주둔한 기지였으며 1945년 미국기지 그 후에는 일본의 육군자위대가 주둔하였다. 1992년에 이곳에 테마파크인 하우스덴보스가 들어서 관광명소가 되었다. 하우스텐보스는 중세 네덜란드를 그대로 옮겨다 놓았기에 일본의 작은 유럽으로 불린다. 다양한 오락시설 뿐만 아닌 레스토랑, 호텔까지 운영하고 있다. JR규슈 남풍의 역(하에노사키역) ▲하에노 사키 역 하에노사키역(南風崎?)은 나카사키현 사세보시 하에노사키정에 있는 역으로, 1898년에 만들어졌다. 태평양전쟁 이후 1945년 10월 4일 귀국자 9,997명 철도 수송을 시작으로 1950년 4월까지 중국, 동남아 방면에서 귀국하는 일본인들이 하에노사키역을 통해 고향으로 돌아갔다. 1945년 시간표에 의하면 도쿄역까지 보통 열차가 수시로 운행한 기록이 있다. JR규슈 지와타역 ▲지와타역 ▲지와타역으로 진입하는 열차 1928년에 역사가 건립되고 영업이 시작되었다. 그 후, 1971년부터 무인역으로 히가시 소노기정(나가사키 현)의 소유가 이전되어 1993년부터 옛 모습 그대로 개축돼 남아 있다. 원래 역사는 지상에 그대로 지어졌기 때문에 콘크리트 위에 현재의 역사를 만들었으며 과거의 역사를 최대한 활용했다. 지와타역은 단선 구간의 지상 역으로 내리막 구간 왼쪽에 목조 역사가 있다. 정차하는 곳에서 앞쪽 계단으로 내려오면 역을 볼 수 있는데, 예전에는 수해를 입어 침수되기도 했다. 역은 오무라만의 해안선을 따라 굽은 구간에 설치되어 있는데, 타고 내리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열차가 바다 쪽으로 기울어진 모습으로 정차한다. 열차에서 내릴 때 승강장과 열차 사이는 넓은 편이다. 지와타역은 아름다운 바다가 한눈에 보여 2014년 겨울의 '청춘 18 티켓' 포스터 사진의 배경지로 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JR홋카이도의 시오가리역 ▲『?狩峠』 주인공의 공적비(시오아리역 구내) ▲시오가리역 ▲시오가리역 앞에 정차한 열차 JR홋카이도의 소야(宗谷) 본선은 홋카이도 아사히가와역과 일본 최북단인 와카나이 역을 연결하는 지방교통선으로 가장 긴 노선인데 그 길이는 259.4km이다. 1898년 8월12일 개통하였으며 최소 곡선 반경은 200m, 최고 속도는 시속 120km이다. 지역의 자원인 목재와 석탄, 수산물을 주로 수송한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사할린과 연락선이 와카나이역에서 연결되어 국제 철도로서의 기능도 수행했다. 소야 본선에 속한 중간역으로 시오가리역이 있다. 시오가리역은 1916년 9월5일에 철도원 소야선의 시오가리 신호소로서 출발하였다. 1924년에 시오가리역으로 승격되었으며, 여객과 화물 취급을 개시했다. 그 후 지역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나 수요 감소로 1986년 무인역으로 바뀌었다. 이곳은 승무원이 여객을 구한 역으로 유명한데, 1909년 2월 28일 8100형 증기기관차가 견인하는 아사히가와 행 최종 급행열차가 시오가기언덕의 정상 부근에 도달했을 때 연결기가 이탈해 마지막 칸의 객차가 분리된 후 역행하면서 사고가 발생했다. 승차한 철도원 아사히가와 운수사무소 서무주님 나가노 마사오(長野政雄)가 핸드브레이크를 조작해 폭주하는 객차를 정지시키려고 했는데 차에서 추락하여 순직하였다. 그의 희생 덕분에 승객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일본의 기독교 작가인 미우라 아야코는 이러한 사실을 소재로 『?狩峠』(우리나라에는 『설령』으로 번역됨)이라는 소설을 써서 유명해졌으며 이는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역주변에는 그를 추모하는 기념비와 미우라 아야코의 문학기념관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그를 기념하는 기념비에는 그가 미우라 아야코가 다닌 아사이가와 6조교회의 주일학교 교장이었으며 당일에도 철도 직원들을 위해 전도를 하고 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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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북3성 거점 단동역과 훈춘역 | 2019.09.02 |
중국의 동북3성 거점 단동역과 훈춘역 1. 들어가며 최근 남북철도연결과 이를 통한 대륙철도와의 연계가능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를 통해 대륙으로 철도가 연결되어 운행할 경우 만나는 것이 중국과 러시아인데 경의선의 경우는 신의주를 통해 중국 단동으로 연결된다. 경원선은 함경선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로 연결되는데 중국의 경우 거점역이 훈춘역이다. 본 고에서는 이러한 시사적인 측면을 고려해서 중국철도의 현황과 함께 단동과 훈춘역을 집중 조명해 보고자 한다 2. 중국의 철도현황 중국철도는 1876년 개통 이후 국민경제의 대동맥으로 중국교통의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여 왔다. 그러나 시장경제로의 변화와 타교통수단의 급격한 발전에 따라 1990년 이후 2000년까지 철도수송 분담률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여 왔으나, 2003년을 기점으로 중장기 철도망 시설확충계획 등 철도발전전략추진 및 경제성장에 따라 철도수송량이 증가하고 있다. 철도영업거리는 2015년 기준으로 121,000km, 2009년 기준으로 여객수송인원은 14.62억명, 화물수송량은 33.04억 톤이며, 철도차량은 총 671,395량으로 화차가 603,082량, 객차 49,355량, 기관차 18,922량이다. 중국철도는 동서 5,400km, 남북 5,200km의 광대한 면적을 사회적으로 통합시키고 경제적으로 결속시키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중국의 철도망은 남북과 동서로 8종8횡(八縱八橫)의 주간선망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거점은 베이징(北京)과 광저우(廣州)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의 주요 철도망] 8종(八縱) . 허브 : 베이징 . 주요노선 : 베이징-하얼빈 노선, 동부연해 노선(선양-광저우), 베이징-상하이 노선, 베이징-지우롱 노선, 베이징-광저우 노선, 다통-잔쟝 노선, 빠오터우-류저우 노선, 란저우-쿤밍 노선 8횡(八橫) . 허브 : 광저우 . 주요노선 : 베이징-란저우, 석탄운송 북노선, 석탄운송남노선, 대륙연계 노선(롄윈강-아라산코우), 난징-시안 노선, 연강(상하이- 충칭), 상하이-쿤밍 노선, 서남출해 노선(쿤밍-진쟝) (주 : 중국 “중장기 철도망계획”을 기초로 재작성.) 중국정부는 2004년 1월 『중장기 철도망계획』을 발표하였는데, 이 계획에는 ‘8종 8횡’의 주간선을 강화하고, 2020년까지 전국철도 총연장 15만km, 베이징~상하이 노선을 포함한 ‘4종 4횡 여객운송전용 고속철도 건설계획’이 핵심내용이다. 이에 따라 ‘10차 5개년 계획’의 2005년까지 총 영업연장 7.5만km, 복선화 2.5만km, 전철화 2만km로 시설을 확장하고, 2010년까지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 고속철도를 완공하였고, 시안(西安)~안캉(安康)/난장(南腸)철도, 티베트(西藏)진입철도 등을 완성하였다. 그리고 2020년까지 롄윈강(連云港)~란저우(蘭州)~우르무치(烏魯木齊)철도, 청두(成都)~쿤밍(昆明)~난닝(南寧)철도를 신설/연장을 계획하고 이를 추진하고 있다. [중국 중장기 철도망계획] - 기본원칙 중장기 철도망 계획은 도로, 항공, 수운, 파이프라인 등 여타 계획과의 유기적 연계를 통하여 추진되며, 운송능력에 한계를 보고 있는 주요 간선은 여객과 화물 분리 운행, 경제 발달지역 및 인구밀집지역은 도시 간 고속여객운송 시스템 구축 계획이다. 또한, 지역 간 연계성 강화 및 철도 운송능력의 조화를 통해 여객 및 화물 운송 주요 적체 현상 해결 및 철도망의 밀도 제고와 운행면적 확대를 통해 지속적인 경제성장, 국토개발, 국방 등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한다는 기본원칙을 정하고 있다. - 주요 내용 1) 철도의 영업연장 15만km(2020년), ‘4종4횡’ 고속 여객운송 전용선 구축 2) 신설철도 1.6만km 부설: 서북지역과 서남지역의 국경을 통과하는 국제철도망의 개조와 신설, 서부대개발 전략에 따른 새로운 철도망 구축 3) 기존철도망의 개량 및 요충지 건설: 석탄 등 에너지원의 운송능력 제고 . 기존노선 개량: 복선화 1.3만km, 전철화 1.6만km . 18개의 철도 컨테이너 전용터미널 건설(화물증가 대비) . 2단 적재 컨테이너 운송열차 운행 . 복합운송 허브지역: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우한, 청두, 시안 - 주요 특징 1) 여객과 화물의 분리 운영(주요간선철도 포화상태) 2) 기존 철도노선망의 정비 및 신설(서부지역 중심) 3) 기존 철도의 운송능력 제고(기존 철도노선 복선화) 4) 철도관련 기술의 혁신 (주 : 중국 “중장기 철도망계획”을 기초로 재작성.) 이중 주요한 내용으로는 중국의 4종 4횡의 여객전용철도 건설계획이 있는데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래과 같으며 쉬저우(蘇州)~정저우(鄭州)~란저우(蘭州) 구간이 TCR노선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4종 4횡 여객전용철도 건설 계획(총 11,940km)] ○ 4종 - 베이징-상하이(1,300km) : 징진에서 창장삼각주 연계 - 베이징-우한-광저우-선전(2,230km) : 화북지역과 화남지역 연계 - 베이징-선양-하얼빈(1,860km) : 동북지역과 관내지역 연계 - 항저우-닝보-푸저우-선전(1,600km) : 창장삼각주, 주장삼각주와 동남연해지역 연계 ○ 4횡 - 쉬저우-정저우-란저우(1,400km) : 서북지역과 화동지역을 연계(TCR구간) - 항저우-난창-창샤(880km) : 화중지역과 화동지역 연계 - 칭다오-스쟈쟝-타이위엔(770km) : 화북지역과 화동지역 연계 - 난징-우한-총칭-청두(1,900km) : 서남지역과 화동지역 연계 (주 : 중국 “중장기 철도망계획”을 기초로 재작성.) 2010년은 중국 고속철도 건설이 크게 확대된 해로 중국은 철도건설에 7,091억 위안을 투자했으며 중국 철도부에 따르면 2010년 말까지 중국 고속철도의 총 길이는 8,358km에 달하며 세계 1위로 나타났다. 2014-2015년간 신설 고속철도는 8,887km 이고 선로의 수는 24개가 있다. 2020년까지의 중국의 철도운영 구간을 1.2만km 이상으로 증축하며, 고속철도건설은 길이 약 1.6만km의 목표를 계획하였다. 그 중에 주요 도시 간선은 승객과 화물을 분리시키고 복선화와 전철화는 각각 50%와 60% 이상을 달성할 것을 전망했다.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배치, 구조, 홍보, 기능 완벽과 원활한 철도 네트워크를 실현하고 운송 능력을 높임으로써 국민경제와 사회발전 수요를 만족시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20년까지 총 5조 위안을 투자해 전국적인 철도망이 완공되면 전국 70%이상의 주요 도시에는 ‘4종4횡’의 고속철도가 개통되어 중국 전역에서 고속철도이용이 가능할 전망이다. 2015년 고속철도도 세계에서 가장 긴 노선을 보유하고 있으며 시속 350km구간도 세계에서 가장 길어 고속철도의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3. 단동역과 훈춘역 중국에서 단동역과 훈춘역은 매우 의미 있는 역이다. 단동역은 북한과 인접해 있으면서 황금평 경제특구에 바로 연결되어 있으며 훈춘역은 북한과 러시아의 인접하여 나선경제특구와 연결되는 주요 거점역이다. 단동은 북한의 신의주와 연결되는 주요한 국경도시이다. 단동시는 북한의 신의주시와 압록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중국 최대의 변경도시임과 동시에 한반도와 가장 인접한 중요 항구로, 전체 시 총면적은 1.5만㎢이며, 그 중 도심의 면적은 800㎢이다. 단동에서 평양까지는 철도로 220km, 서울까지는 420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동 항구에서 인천항까지의 거리는 245해리, 일본 나가사키항까지의 거리는 590해리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 동남지구와 한국, 일본과 지근거리에 있는 육로와 해로가 모두 열려있는 요충지로, 우월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단동시는 비교적 좋은 공업발전 기초조건을 구비하고 있는데, 풍부한 자원을 기본으로 편리한 교통망과 원활한 전기공급 등 투자대상지로서는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구비하고 있다. 이처럼 단동은 향후 우리나라 TKR철도를 바로 연결되는 중요한 국경역이다. 과거 단동과 심양을 연결하는 노선은 안봉선으로 불리웠는데 과거 러·일전쟁시대에는 궤간 762mm의 군용경편철도로서 건설되었다. 일본은 압록강을 건너 1904년에 봉황성까지 점령하자 1904년 11월에 단동으로부터 봉황성간을 개통시켰고 1905년 2월에는 심양까지 개통시켰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포츠머드조약에 의해 러시아로부터 뢰순, 대련-장춘간의 철도를 인수하여 1906년11월에 남만주철도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인수한 구간의 궤간은 러시아의 1524mm의 광궤에서 1435mm의 표준궤로 개축하였다. 이 때 안봉선은 만철선의 지선이 되었고 1911년 11월1일에 협궤로부터 표준궤로 개축되었다. 이로부터 만주와 단동 조선의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철교에 의해 우리나라와 중국이 연결되게 되었다. 1911년 11월2일부터 양국의 직통열차가 운행하였다. 단동역은 중국주요도시와 고속철도로 연결되고 있다. 먼저 단동과 대련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는 1일 12왕복하고 있다. 단동과 심양간의 고속철도는 1일 38왕복이다. 재래선은 5왕복이다. 고속철도의 발착이 1일 100편, 재래선이 10편이 운행하고 있다. 중국의 재래선은 고속철도와 같이 궤간이 1,435mm표준궤이기 때문에 같은 홈에 재래선과 고속철도가 열차가 혼재하고 있다. 단동역을 종점으로 하는 심양과 단동을 연결하는 고속철도가 2013년 9월에 개통되었다. 총 연장 208km로 운행속도는 시속 250km로 양 도시를 1시간에 연결하고 있다. 이는 기존 재래선이 3시간 걸리는 것을 1/3로 단축하였다. 이 고속철도는 2010년 3월에 착공하였다. <사진> 단동역 한편 재래선도 단동과 심양을 연결하고 있는데 이는 북경에서 평양구간의 국제열차가 매일 운행하고 있다. 한편 단동과 대련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는 2015년 9월에 개통되었다. 총 연장은 293km 이며 열차의 최고속도는 시속 200km이다. 20개의 정차역이 존재하고 있다. 이 노선은 현재 중국과 북한의 북경을 연결하는 동변도 철도의 일부노선이기도 한다 한편 러시아와 북한과 연결되는 국경역으로 지리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훈춘역은 1992년3월 훈춘시가 대외개방도시로 지정되어 도문에서 훈춘까지 철도건설이 시작되어 1993년 9월에 개통되었다. 훈춘과 길림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는 총 길이 360km구간으로 시속 250km로 설계되어 2015년 10월에 개통되었다. 고속철도역은 이 때 새롭게 만들어졌다. 길림에서 출발한 고속철도는 둔화~조양천~연길~도문~ 훈춘으로 연결된다. 훈춘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를 연결하는 주요 거점 역으로 일찍이 두만강지역 개발목표에 합의하여 추진되고 있다. 훈춘역은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데 러시아와 중국 북한에 입접해 있다. 장춘~훈춘~자루비노항을 통해 속초와 부산으로 연결되고 있다. 이 지역은 장춘~길림~연지~도문~남양~함북선으로 나진으로 연결되는 노선이기도 한다. 훈춘역에서 러시아 TSR이 연결되는 국경역인 그라스칸역까지 40km구간은 광궤와 표준궤의 복합궤가 운용되고 있다. <사진> 훈춘역 장래 단동역과 훈춘역은 북한과 연결되는 주요역으로 기능할 것이며 향후 동아시아교통허브로서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 북한과 중국 러시아 두만강 국경(방천에서 촬영) <참고문헌> 포스코 그룹 물류투자관련 조사보고서 2011년 오다케 나오토『國境鐵路』 2017년 일본 えにし서방주식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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